용서하라는 말이 가장 잔인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미움을 내려놓으라니, 그건 마치 나에게 아프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를 못 하는 자신을 두고 또 한 번 자책하게 됩니다. 상처받은 것도 억울한데, 용서까지 못 하는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감정을 리셋하는 버튼이 아닙니다. 버튼을 누르면 미움이 사라지고 그 사람이 다시 좋아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용서는 미움이 사라져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이 남아 있는 채로도 내디딜 수 있는 방향입니다. 감정이 다 정리되기를 기다리면, 우리는 영원히 시작하지 못합니다.
용서는 '그 일이 괜찮았다'는 인정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한 일은 여전히 잘못이고, 당신이 받은 상처는 진짜입니다. 용서는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매인 나를 놓아준다'는 결심에 가깝습니다. 미움은 상대를 벌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하루하루 갉아 먹히는 것은 미워하는 쪽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먼저 해도 되는 것은 감정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일입니다. 나는 아직 밉다고, 아직 아프다고, 아직 그 일이 떠오르면 속이 뒤집힌다고.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정직함 위에서만 용서는 억지가 아닌 진짜가 됩니다. 인정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안에서 곪습니다.
용서는 완벽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아 본 적 있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너그러움에 기대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받았던 그 너그러움을 아주 조금 흘려보내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오늘은 그 사람을 완전히 용서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대신 그 미움이 나를 계속 갉아먹지 않도록, 손을 조금씩 펴는 연습부터 시작해 봅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무게에 눌린 나를 위해서. 용서는 한 번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여러 번 마음을 고쳐먹는 긴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혼자 힘으로만 해내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도무지 안 되는 마음은, 안 되는 그대로 들고 가도 괜찮습니다. 오늘 한 뼘, 내일 또 한 뼘. 손을 펴는 방향으로 조금씩 가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용서는 감정을 리셋하는 버튼이 아닙니다. 미움이 사라져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이 남아 있는 채로도 내디딜 수 있는 방향입니다.
용서는 '그 일이 괜찮았다'는 인정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매인 나를 놓아준다'는 결심입니다.
오늘은 완전히 용서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무게에 눌린 나를 위해서 손을 조금씩 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