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낸 뒤의 시간은 이상하게 흐릅니다. 어떤 날은 아무 일 없었던 듯 지나가다가, 어떤 날은 사소한 물건 하나에, 익숙한 노래 한 소절에, 문득 무너집니다. 슬픔은 순서대로 옅어지지 않습니다. 괜찮아졌다 싶으면 다시 밀려오고, 그 반복 앞에서 우리는 자신이 이상한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제 괜찮아졌냐고, 그만 털고 일어나야 하지 않겠냐고 묻습니다. 좋은 뜻인 걸 알지만, 그 말은 종종 슬픔에 시간표를 강요합니다. 그러나 슬픔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습니다. 몇 달 만에 회복하는 사람도,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리운 사람도, 모두 틀리지 않았습니다.
애도는 잊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 없이 살아가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시간입니다. 아침에 눈뜨는 법, 밥을 먹는 법, 웃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법까지. 그래서 오래 걸리는 것이 당연하고, 자주 되돌아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잊어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안고 걷는 법을 익혀서 나아지는 것입니다.
슬픔이 남아 있다는 것은, 실은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이 컸으니 빈자리도 큰 것입니다. 그러니 여전히 슬픈 자신을 나무라지 마세요. 그 슬픔은 당신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말해 주는,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무너지는 날에는 무너져도 됩니다. 씩씩하게 견디는 것만이 애도는 아닙니다. 울어도 되고, 아무것도 못 하고 하루를 흘려보내도 됩니다. 참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슬픔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이 강한 것입니다. 눌러 둔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더 깊은 곳에서 기다립니다.
다만 그 슬픔 속에 혼자 있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무너진 사람 곁에는, 생각보다 가까이 누군가가 있습니다. 애통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찾아온다는 오랜 말은, 슬픔을 빨리 끝내라는 재촉이 아니라 그 슬픔의 한복판에 위로가 함께 있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그저 오늘을 살아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운 사람을 마음 한편에 둔 채로, 한 끼를 먹고 한 번 숨을 쉬는 것. 그렇게 하루를 건너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슬픔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습니다. 몇 달 만에 회복하는 사람도, 몇 년이 지나도 그리운 사람도 모두 틀리지 않았습니다.
애도는 잊는 과정이 아니라, 그 사람 없이 살아가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시간입니다.
슬픔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